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핵 윌슨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1900년 [[펜실베이니아]] 주 엘우드 시티에서 태어난 로버트 루이스 윌슨은 어릴 때부터 괴력으로 유명해 일명 해머링 핵(Hammering Hack)[* 여기서 따온 핵 윌슨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피 위 리즈나 베이브 루스처럼.]으로 불리며 10대를 기관차 회사와 조선소에서 보냈다. 그러다 메이저리그의 눈에 띄여 1923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에서 데뷔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맞는 치수의 유니폼이 없어 곤란에 빠진 윌슨에게 당시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 [[존 맥그로]]가 한 벌의 유니폼을 건네고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위대한 선수가 입었던 이 유니폼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지말라." >"걱정 마라, 이 유니폼은 또 한 명의 위대한 선수에게 계승됐다." 그야말로 괴력과 자신감 덩어리인 핵 윌슨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에피소드.[* 이때 핵 윌슨이 존 맥그로에게 근데 대체 이게 누구 유니폼이길래 그러냐고 묻자, 존 맥그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내꺼다.'''"(...) 맥그로는 흔히 전설적인 명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선수 시절에도 대단한 활약을 기록했다. 통산 48.9 fWAR, 시즌 최고 기록으로는 1899년의 '''9.0'''. 그리고 출루율 .467로 메이저리그 통산 3위 기록의 보유자이다.] 하지만 자신감과 달리 핵 윌슨은 자이언츠에서 뛴 3년 동안 불과 172경기 출장, 16홈런 87타점에 그친다. 타율-출루율-장타율 슬래시 라인은 276/.352/.461 에 불과. 물론 이것도 좋은 기록이지만 윌슨의 자신감을 뒷받침 해주기는 부족했다. 결국 핵 윌슨은 이듬해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는데, [[리글리 필드]]에서 윌슨은 비로소 실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 3시즌 동안 각각 21홈런-30홈런-31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 3연패에 등극.[* 1926시즌 21홈런은 [[시카고 컵스|컵스]] 팀 홈런 전체의 31.8%에 달한다.][* 1927시즌은 사이 윌리엄스와 공동 1위, 1928시즌은 짐 바텀리와 공동 1위.] 기세를 몰아 윌슨은 1929년에도 홈런왕 4연패를 위해 시동을 걸고 시즌 39홈런을 기록하나 43개의 [[척 클라인]], 42개의 [[멜 오트]]에게 밀려 시즌 3위에 그치고 만다.[* 1929시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시카고 컵스|컵스]]로 이적한 로저스 혼스비와 공동 3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9시즌 핵 윌슨의 성적은 어마무시하여 시즌 159타점으로 NL 및 MLB 통합 타점왕에 오른다. 더불어 1929시즌 시카고 컵스는 간만에 월드시리즈에 올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와 패권을 겨루게 되는데, 당시만 해도 선글래스 등의 장비가 열악한 터라 4차전에서 햇빛에 평범한 타구를 놓치는 등의 실수를 연발하게 되고 결국 1승 4패로 시리즈를 내주게 된다. 이후 핵 윌슨은 다시는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1930시즌이 돌아오는데. 1930시즌 핵 윌슨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1위.] 155게임 709타석 585타수 208안타 2루타 35개 3루타 6개 '''56홈런''' '''191타점''' 146득점 '''105볼넷''' 84삼진 타율 .356 출루율 .454 '''장타율 .723''' '''OPS 1.177''' '''조정 OPS 177'''[* 리그 평균 OPS를 100으로 잡았을 때 수치로, 177은 곧 리그 평균보다 1.77배 잘했다는 말이다.] 당장 전 시즌 척 클라인이 기록한 NL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 무려 13개 차이로 갱신되었고, 이 기록은 훗날 [[마크 맥과이어|약쟁이]] [[새미 소사|두 놈]]이 갱신하기 전까지 68년간 자리를 지키게 된다. 물론 타점 기록은 그야말로 불멸의 대기록. 훗날 [[루 게릭]]이 1931시즌 184타점, [[행크 그린버그]]가 1937시즌 183타점, [[지미 폭스|지미 팍스]]가 1938시즌 175타점, [[후안 곤잘레스|어느 약쟁이]]가 1998년 157타점[* 당시 전반기 101타점을 기록하여 기대치가 꽤 높았다.], [[매니 라미레즈|또 다른 약쟁이]]가 1999시즌 165타점 등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심지어 1930시즌 핵 윌슨의 기록을 162경기에 대입한다면 무려 60홈런 200타점이 나온다. ESPN이 선정한 불멸의 대기록 TOP 10에 손꼽히기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타점이란 기록이 워낙 선행 주자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며, 1930시즌 핵 윌슨의 앞에서 밥상을 깔아주던 이들이 [[개비 하트넷]]과 [[로저스 혼스비]] 라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이라는 유리함이 있지만, 그렇다 하여도 찬스 때마다 여지없이 주자를 불러들인 핵 윌슨의 해결사 능력은 폄하할 수가 없을 것이다. 1930시즌은 핵 윌슨에게 있어 불멸의 대기록을 수립한 시즌이지만, 동시에 마지막 불꽃과 같은 시즌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